답은 IEC 62443이다. 산업제어시스템(ICS/SCADA)을 위한 국제 사이버보안 표준이고, 자동차 공장의 PLC와 생산 라인도 이 표준의 적용 대상이다.
IEC 62443이란 무엇인가
IEC 62443은 산업자동화제어시스템(IACS, Industrial Automation and Control Systems)을 위한 사이버보안 국제 표준 시리즈다. 원래는 ISA(국제자동화협회)가 ISA-99로 시작한 표준이 IEC(국제전기기술위원회)와 함께 발전시킨 것이다.
2021년 11월, ISA와 ISA Global Cybersecurity Alliance(ISAGCA)는 IEC가 이 표준을 "수평적(horizontal)" 표준으로 인정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산업제어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자동차를 포함한 다양한 산업에 기술 독립적으로 적용 가능한 기반 표준으로 격상됐다는 의미다.
자동차 업계에 ISO/SAE 21434가 있다면, 산업제어 분야에는 IEC 62443이 있다. 자동차 OEM과 Tier 1 입장에서 이 표준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하다 — 차량을 만드는 공장 자체가 IACS이기 때문이다.
왜 만들어졌는가 — 폐쇄망에서 연결된 공장으로
과거 공장은 외부 인터넷과 거의 연결되지 않는 폐쇄망 구조였다. PLC, 산업용 네트워크, HMI가 격리된 환경에서 동작했다. 이런 환경에서는 보안보다 가용성과 안전이 우선이었다 — 애초에 외부에서 접근할 경로가 없었기 때문이다.
Industry 4.0, Smart Factory, IIoT(Industrial IoT)가 확산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공장이 MES, ERP, 클라우드, 인터넷과 연결되기 시작했다.
Stuxnet(이란 핵시설 원심분리기 공격), Colonial Pipeline(미국 송유관 랜섬웨어로 인한 가동 중단), Triton(석유화학 안전계기시스템 공격), NotPetya(머스크를 비롯한 글로벌 제조·물류 기업 마비) — 산업 제어 시스템이 더 이상 "물리적으로 격리되어 있으니 안전하다"고 가정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들이다. 2017년 사우디아라비아 석유화학 공장 사건에서는 안전계기시스템(SIS)이 물리적으로 격리되어 있었음에도 원격 접근 경로를 통해 공격자가 침투한 사례도 있다.
이런 사건들 이후 IEC 62443은 사실상 산업 보안의 글로벌 기준이 됐다. 자동차, 전력, 석유화학, 의료 등 다양한 분야의 OT 환경에 적용되고 있다.
OT 보안은 IT 보안과 우선순위가 다르다
이 표준을 이해하는 핵심은 OT(Operational Technology)와 IT의 우선순위가 정반대라는 것이다.
은행 서버가 1시간 멈추면 불편함이 생긴다. 자동차 생산 라인의 PLC가 1시간 멈추면 막대한 손실이 발생하고, 발전소 제어 시스템이 멈추면 정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OT 보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해킹을 막는 것"이 아니라 "공장을 멈추지 않게 하는 것"이다. Rockwell Automation도 OT 환경에서는 암호화 처리로 인한 지연(latency)이 "Stop" 명령을 100밀리초 지연시켜 실제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 IT에서는 영상통화가 느려지는 정도의 문제가 OT에서는 안전 문제가 된다.
IEC 62443의 구조 — 4개 그룹
IEC 62443은 단일 문서가 아니라 여러 파트로 구성된 표준 패밀리다. 크게 4개 그룹으로 나뉘며, 각 그룹은 서로 다른 대상(공급자, 시스템 통합자, 자산 운영자)을 위해 작성됐다.
Zone & Conduit — SDV Zonal Architecture와 닮은 개념
IEC 62443에서 가장 유명한 개념은 Zone과 Conduit이다.
Zone — 유사한 보안 요구사항을 공유하는 자산들의 논리적·물리적 집합. 기능적, 논리적, 물리적 관계를 기준으로 그룹화한다.
Conduit — Zone과 Zone 사이의 통신 경로. 서로 다른 보안 수준을 가진 Zone들이 공존할 수 있도록 보안 기능을 제공하며, 통과하는 트래픽을 엄격하게 통제한다.
Network
Network
Zone
Security Level — ASIL과 비슷하지만 다른 개념
IEC 62443에는 ASIL과 유사하게 보이는 Security Level(SL) 개념이 있다. 4단계로 구성된다.
ASIL은 보통 하나의 목표 등급으로 다뤄지지만, IEC 62443의 SL은 세 가지로 구분된다.
SL-T (Target) — 자산 운영자가 리스크 평가를 통해 정하는 목표 보안 수준
SL-C (Capability) — 시스템·컴포넌트가 추가 보완 조치 없이 자체적으로 갖춘 기술적 보안 역량
SL-A (Achieved) — 실제 운영 환경에서 측정된 달성 보안 수준
목표(SL-T)와 실제 제품이 가진 역량(SL-C)이 다를 수 있고, 부족한 부분은 보완 대책(Compensating Countermeasure)으로 채울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레거시 장비처럼 기술적 요구사항을 직접 충족할 수 없는 경우를 위한 현실적인 장치다.
자동차 업계와의 관계 — 직접 연결은 아니지만 같이 간다
ISO/SAE 21434와 IEC 62443은 적용 대상이 다르다. 21434는 차량(제품)을, 62443은 공장(생산 환경)을 다룬다. 법적으로 직접 연결되어 있지는 않다.
하지만 실제로 글로벌 Tier 1들은 두 표준을 모두 다룬다. 제품은 ISO/SAE 21434 기반으로 개발하고, 그 제품을 만드는 공장은 IEC 62443 기반으로 보호하는 구조다.
Bosch는 자사 산업 사이버보안 대응에서 IEC 62443을 OT 시스템과 데이터를 보호하는 핵심 프레임워크로 명시하고 있다.
Ubuntu 개발사 Canonical은 ISO 26262·ISO/SAE 21434 같은 자동차 표준에서 쌓은 경험이 IEC 62443 준수 역량으로 전환 가능하다고 설명하며, 그 근거로 라이프사이클 관리, 리스크 평가, 안전과 보안의 통합이라는 공통 원칙을 들었다.
| 구분 | ISO/SAE 21434 | IEC 62443 |
|---|---|---|
| 보호 대상 | 차량(제품) | 공장·산업 제어 시스템(생산 환경) |
| 핵심 산출물 | TARA, Cybersecurity Case | Zone & Conduit 설계, SL-T/SL-C/SL-A |
| 관리체계 명칭 | CSMS | CSMS (같은 용어, 다른 범위) |
| 우선순위 | 차량 기능 안전과 보안의 균형 | 가용성(생산 중단 방지) 최우선 |
| 공통 원칙 | 리스크 기반 접근, 생애주기 관리, 공급망 보안 요구사항 전달 | |
21434는 차량을 보호하고, 62443은 그 차량을 만드는 공장을 보호한다.
SDV 시대 — 공장과 차량의 경계가 흐려지는 지점
SDV가 확산되면서 공장과 차량의 보안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는 영역이 생기고 있다. 차량 생산 공장 안에서도 OTA 서버, PKI 인프라, Key Provisioning 시스템이 운영되기 때문이다.
공장 네트워크가 랜섬웨어에 감염돼 생산이 멈추면, 단순히 매출 손실로 끝나지 않는다. Key Injection 프로세스가 중단되거나, 비정상 상태에서 강제로 재가동되는 과정에서 보안 절차가 생략될 위험이 있다. 21434 관점의 TARA가 "생산 단계 위협"을 다룰 때, 그 위협의 상당 부분은 실제로는 62443이 다루는 영역과 겹친다.
🔧 현업에서 느끼는 것들
ISO/SAE 21434가 답하는 질문은 "이 차량을 신뢰할 수 있는가"다.
IEC 62443이 답하는 질문은 "이 차량을 만든 공장을 신뢰할 수 있는가"다.
SDV 시대에는 이 두 질문이 점점 같은 곳에서 만나고 있다 — 공장 안의 PKI, Key Provisioning, OTA 인프라가 그 접점이다.
'차량 사이버보안 > 산업 인사이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SDV 시대에는 Tier1이 무엇을 팔게 될까? — 하드웨어 공급사에서 소프트웨어 공급사로 (0) | 2026.06.19 |
|---|---|
| ExVe란 무엇일까? — 자동차 데이터 전쟁의 시작 (0) | 2026.06.16 |
| 티빙 해킹은 자동차 업계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 차량은 이제 ECU보다 계정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1) | 2026.06.15 |
| 차량 사이버보안 인력은 어디서 키울까? — OEM·협력사가 겪는 현실 (0) | 2026.06.01 |
| HSM 없는 MCU ECU, 어떻게 보안할까?— 외장 보안칩을 활용한 현실적인 구조 (0) | 2026.05.28 |